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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Yoon, Jong-seok

글 | 박영택(경기대학교교수, 미술평론)

 

누군가의 살을 감싸고 피부에 달라 붙어있던 옷이 그 몸에서 빠져나와 홀로 존재할때는 어딘지 이상하다. 옷은 부피와 볼륨을 상실하고 허깨비처럼 내려앉아있다. 주름이 잡히고 접혀있으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기도 하고 맥없이 늘어진 체 벽에, 옷걸이에 걸려있다. 우리는 옷을 보는 순간 누군가의 육체를 떠올릴 수 있다. 그 옷의 주인공이었을 누군가의 살내음과 땀과 호흡, 맥박 그리고 그 옷과 함께 했을 시간과 공간의 흔적들을 상상해본다. 옷은 그/그녀를 대체하는 유령이자 혼에 가깝다. 아울러 옷은 몸에서 풀려나와 홀로 자존한다. 동시에 옷은 색상과 문양, 질감과 브랜드를 지닌 이미지, 볼거리이기도 하다. 옷의 피부를 덮고 있는 온갖 시각요소들이 이제 옷의 정체성과 스스로의 삶을 증거한다. 옷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 지으려는 인간의 허영심이 머무는 곳,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긍정하려는 욕망이 개입하는 곳이다. 옷이라는 사물은 실제 물건 아니라 가상의 혹은 허구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것은 구별짓기distinction의 수단이다. 그러니까 옷은 즉물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유혹하는 강력한 상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옷을 뒤덮고 있는 문양과 기호는 실제의 환영이다. 옷은 껍데기로 육체를 대신해 몸이라는 실재의 흔적 위에 가상의 존재성을 시뮬레이션한다. 이제 옷이 몸을 대신해 주체가 되고, 옷의 표면은 텍스트처럼 읽힌다. 옷은 스스로 발화한다. 지껄인다. 사물이 주체가 된다. 옷은 너무 많은 메타포를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옷은 기본적으로 무기물, 다시말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옷 속의 몸은 유기물이고 살아있다. 유기물에 무기물이 기생하고 얹혀지고 밀착되면서 또 다른 존재로 육체를 변질, 변형시킨다.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하나로 얽혀 다른 존재로 나아간다.

 

사실 옷은 무엇보다도 성적 페티시즘을 불러일으킨다. 옷을 입는 이들은 수단으로서의 옷 자체에 자신의 성적 욕망을 모두 투사해버린다. 그래서 벤야민의 통찰처럼 “패션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 사랑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포함한다.” 옷은 신체를 가리고 동시에 드러낸다. 그 틈에서 욕망은 빛을 발한다. 또한 옷은 단순히 인간의 신체에 입혀진 도구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태적 측면은 물론 심리적, 문화적 상징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계급적, 기호적 취향과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우 강력한, 절대적인 기호다. 이렇듯 옷은 옷주인의 감정과 미의식, 기호와 취향을 시각화하고 가시화하는 적극적인 표현행위에 해당한다. - 중략 -

윤종석은 옷과 대화를 나누고 옷에서 연상되는, 옷이 말하는 내용을 들어 이를 형태화한다. 옷이란 물질을 생명체처럼 다룬다. 이른바 물활론적인 사유가 작동한다. 옷에 숨겨진 또 다른 존재를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아울러 옷이란 것이 인간의 몸을 어떤 식으로 위장하고 있으며 옷이 몸 위에서 어떤 발언을 행하고 있는 지를 탐사한다. 

그는 옷을 접고 만지면서 짐승의 대가리나 권총, 별 등을 만들어 보인다. 기성의 옷을 조각적으로 다룬다. 그리고는 이를 점으로 재현한다. 꼼꼼히 그려나간다. 마치 천의

올을 하나씩 세어가면서 그리듯이 말이다. 그는 물감/점들을 가지고 옷을 ‘짜’나간다.

죽었다고 여겨졌던 옷들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환생한다. 무기물의 옷이 유기물이 되는 순간이며 인간의 몸에 의존적이어야만 했던 옷들이 인간의 몸 없이도 자존하는 생애를 부여받았다. 이제 옷들은 스스로 발화하는 존재가 된다. 옷이 육체에 종속되었다면 윤종석의 작업은 육체없이도 존재하는 옷을 보여준다. 인간의 몸에 기생했던 옷들이 그로부터 풀려나와 옷에 부여된 기호와 연상된 어떤 형태를 자발적으로 드러내게 한다. 그렇게 옷은 스스로 살아나서 다양한 생명체가 되거나 일상의 사물로 변신한다. 옷이 총이 되거나 짐승의 얼굴이나 화분, 가방 혹은 별이 되는 식이다. 그로인해 찰나적인 경이의 순간을 만난다.

 

작가는 다양한 옷들을 수집, 선택한다. 옷에 깃든 문양과 색채, 문자와 기호들에 주목한다. 옷은 매혹적인 볼거리다. 그것은 신체위에서 전시된다. 특정한 의미를 발산하는 옷의 기호적 속성을 주목하면서 그 옷에 새겨진 흔적들을 가지고 자연스레 또 다른 사물을 연상, 꿈꾼다. 그는 옷을 가지고 몽상 한다. 그렇게 해서 떠오른 또 다른 존재를 옷을 가지고 만든다. 그런 후에 이를 다시 그림으로 그린다. ‘레디메이드’가 조각이 되고 그것이 다시 그림이 된다. 입체가 조각적 오브제가 되고 그것은 다시 회화적 소재가 된다. 사물이 조각이 되고 조각은 점으로 환원, 회화가 된다. 그는 옷에서 발견한 형태를 평면의 화면 위에 점의 배열로 그려나간다. 그에게 점은 “최소표현의 단위이자 동시에 어떠한 군더더기도 포함하지 않는 몸뚱이를 지니며 편집증적인 제스처의 신체적 결과물”이기도 하다.주사기로 점을 찍고, 쏘고 그렇게 배출된 낱낱의 점들을 집적시켜 형태를 만들어 보인다. 농도를 유지한 각각의 점들은 정확히 자신의 정해진 자리에 응결된다. 사실 구체적인 존재는 부재하다. 다만 개별적인 점만이 자신의 위치를 증거할 뿐이다. 그것은 그저 납작한 평면위에 일정한 높이를 갖고 튀어올라온 점들의 자취에 불과하다. 오돌도돌하게 융기한 점들은 화면 전체에 흡사 두드러기처럼 번져나가면서 촉각적인 부조를 만들어 보인다. 손으로 더듬고 싶은 유혹을 불러 일으킨다. 동시에 이 점은 이미지를 추상화시킨다. 화면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시간을 유지하면 그 무수한 작은 점들은 옷이자 또한 짐승의 대가리나 별, 권총 등으로 보인다. 다시 화면으로 밀착하면 형상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점만이 가득하다. 그것은 점과 형상 사이에서 놀이한다.

 

시간과 거리에 따라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는 기이한 유희가 제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인 동시에 그 모두가 결국 점들로 환원되어 버리는 아이러니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점찍기, 점의 발사를 반복한다. 그것은 시간에 저항하는 일종의 의식같기도 하다. 고된 노동의 순연한 가치를 정성껏 반복한다. -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