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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Gu, Bon-ju

일그러진 우리 시대의 영웅, 영웅들

고충환 (미술평론가)

 

구본주의 작업은 흔히 '최소한의 구조' 및 '소재의 물성'으로 대변되는 모더니즘 형식주의 조각과는 다르다. 이들 조각에는 인간이 없다. 대신 관념을 가능한 한 압축시킨 본질적인 국면과 조각이라는 특정 장르 내부를 향한 반성적인 이해가 있을 뿐이다. 간혹 인간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조차 인간의 정체성은 어떤 구상적인 외관을 갖기보다는 거의 예외 없이 특정의 관념 혹은 소재의 물성에 종속되거나 치환되거나 해체된 방식으로 다루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관념을 형상화한 것이요 소재의 물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매개나 다름없다. 

 

 

대신 이 작가의 작업은 흔히 '상황주의'로 대변되는 구상조각의 연장선에 있다. 여기서 상황주의란 여타의 구상조각에서 보듯이 인간의 신체적 조건을, 특히 여체를 현실과는 일정정도 거리를 갖는 어떤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정념을 담아내는 유비로, 이를테면 시적인 이미지즘 혹은 종교적인 이상 혹은 자연관을 형상화하기 위한 유비로 이해하기보다는 현실에 밀착된 어떤 '상황'에 주목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때의 상황이란 항상 당대 혹은 동시대적일 수밖에 없는 적나라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가 처한 조건을 의식하는 것이며, 이렇듯이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과 스스로의 작업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존재와 의식'인 점은 이러한 '상황'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동시대를 사는 인간의 존재가 처한 조건을 의식하는 작업의 정체성을, 의식해야 한다는 작업의 당위성을 주지시키는 것이리라.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동시대적인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관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가치 혹은 의미로까지 작업의 지평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주목하는 현실 인식, 곧 상황의 인식은 어떤 식으로든 발언의 형식을 취하기 마련이며, 대개 그렇듯이 그 발언은 비판적인 것으로 귀결된다.

 

 

그 본질상 현실인식이란 언제나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이요 반성이기 때문이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질러 넣은, 허탈함의 정도를 넘어 차라리 무표정한 남자의 초상이 안쓰럽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으로 보아 낮술을 마셨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벽을 한바퀴 휘돌 만큼 목을 길게 뽑아 뭔가를 조심스레 주시하는 남자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된 그의 의심스런 표정에서 실존주의적 소외를 넘어서는 삶의 리얼리티가 발견된다. 

가부장적인 편견에 의해 부가된 것이긴 하지만, 한때 사슴 혹은 기다리는 여성의 그리움을 위해서나 쓰여졌던 긴 목의 시적 이미지와는 얼마 동떨어진 것인가. 눈치밥 삼십 년에 청춘을 다 보내고 볼썽사나운 대머리만 남은 남자의 초상이, 사생결단을 낼 작정으로 서로 밀치고 밀리는 마치 구겨진 종이처럼 일그러진 두 남자의 얼굴이, 뜻하지 않은 날벼락을 맞아 마치 만화에서처럼 눈알이 뱅뱅 돌고 혀가 한 자나 빠진 남자의 우스꽝스런 몰골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이빨을 앙 다문 채 중심을 잡으러 애쓰는 쩔쩔매는 남자의 과장된 제스처가, 삶의 윤리가 동물적인 차원과 다른 것일 수 없다는 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을 재학습시키고 있다. 현실을 비판하는 작가의 무기는 혁명과 '안티'를 전면에 내세우는 직접화법보다는 풍자와 해학의 주변에 머무는 우회 혹은 간접화법에 가깝다. 현실의 객관적인 반영이기보다는 현실을 한층 더 적나라한 현실로, 더 절실한 현실로 더 극적인 현실로 증폭시키는 과장된 화술에 가깝다. 

그 과장의 도구가 '왜곡'인 것이며, 이렇게 과장된 왜곡과 결과가 흔히 적색으로 대변되는 피의 들끓음이나 흑색으로 배변되는 비극적인 페이소스 혹은 파국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가소로운 존재의 가벼움으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밀란 쿤데라 류의 키치를 상기시킨다. 과장된 웃음과 과장된 비장미와 과장된 제스처와 지나친 진지함이 한 덩어리를 이룬, 결코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마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가 자본주의 시대의 예수랄 수 있는, 과장된 웃음의 이면에 시대의 상처란 상처는 다 가리우고 있는 '광대의 미학'을 형상화 한 듯하다. 

이렇듯이 과장되고 왜곡된 화법이 현실을 희화함으로써 마치 만화 혹은 일러스트를 조각으로 번안한 듯하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이, 그 주인들의 삶이 아름답다.